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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드리드 더비’, 강릉 정기전의 모든 것

작성일 : 2016-06-09 조회수 : 13,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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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FC의 U-18팀인 강릉제일고등학교 축구부(이하 제일고)가 숙명의 라이벌과 격돌한다.

제일고는 2016년 6월 11일 오후 4시에 강릉종합운동장에서 강릉중앙고등학교 축구부(이하 중앙고)와 더비매치를 치를 예정이다. 제일고는 중앙고와 1976년부터 매년마다 단오제를 기해 ‘강릉 정기전’이라는 이름의 축구대회를 치러왔다. 지금까지의 전적은 28전 8승 14무 6패로 제일고가 근소하게 앞서고 있다. 하지만 두 학교의 정기전은 2014년부터 작년까지 2년간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 6월 11일에 벌어질 두 팀의 경기는 3년만에 치러지는 정기전인 셈이다. 

제일고와 중앙고는 모두 7~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 명문학교다. 이로인해 두 학교의 맞대결은 제일고의 옛 이름인 ‘강릉상고’와 중앙고의 옛 이름인 ‘강릉농공고’를 따서 ‘상농전’,‘농상전’ 등으로도 한국 축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져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강릉 정기전이 3년만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여 제일고와 중앙고의 라이벌 관계, 그리고 강릉 정기전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강릉 축구의 태동-초당의숙과 단양제축구대회

강릉 정기전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우선 초당의숙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강릉의 축구는 1906년에 지역유지인 최용집이 설립한 초당의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근대식 야학교였던 초당의숙은 축구,야구,빙상스케이트 등 근대 스포츠를 가르쳤고 화산학교,동진학교 등 인근의 학교들과 함께 연합운동회를 개최했다. 이는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항일정신을 교육하기 위한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이었다.

초당의숙의 이러한 노력은 강릉에 서구 스포츠를 즐기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리고 1920년대부터는 단오제를 기하여 매년마다 ‘단양제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일제에 의한 억압으로 고통받던 강릉 시민들에게는 축구가 삶의 활력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축구대항전이 열리는 날이면 강릉의 모든 지역민들이 생업을 중단하고 축구장에 집결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단양제축구대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춘천,철원,원산,함흥,홍천 등 전국 각지의 30여개 지역 팀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축구잔치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 열기는 강릉의 학교들이 축구부를 창단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935년에는 중앙고등학교가, 1941년에는 제일고등학교가 축구부를 창단했다.




#제일고와 중앙고가 이끈 강릉축구의 부흥

그러나 1942년 가을에 삼척에서 열린 축구대회에 제일고 선수 10명이 삼척팀 소속으로 참가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인해 제일고 축구부는 강제로 해체되었다. 또한 그해 11월에는 일제가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구기 종목 금지령까지 내렸다. 여러가지 악재를 맞은 강릉 축구는 1945년까지 짧지 않은 암흑기를 보내야했다.

8.15 광복 이후 강릉에서는 다시 단오제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제일고는 1945년에 다시 축구부를 창단했고 1945년에 축구부를 해체했던 중앙고도 1946년에 축구부를 재창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흥은 잠시였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강릉의 축구는 정전이 이뤄지는 1953년까지 다시 침체기를 겪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강릉의 축구열기는 제일고와 중앙고의 단오제축구대회를 중심으로 되살아났다. 그리고 1960년 5월에는 남대천 부근에 노암공설운동장이 건립되면서 강릉의 축구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약 1만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노암공설운동장에서는 매년 단오제때마다 제일고와 중앙고의 축구경기가 열렸고 두 학교의 학생들과 동문들은 항상 경기장을 가득 메운 채 응원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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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정기전의 탄생과 발전

강릉의 학교축구는 1970년대가 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제일고는 1956년에 해체되었던 축구부가 1971년에 재창단되었다. 15년만의 부활이었다. 그리고 제일고 축구부는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강팀으로 성장했다. 또한 인근의 주문진수산공업고(이하 주문진수고)도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며 강릉의 축구열기에 불을 지폈다.

이러한 일들이 이어지자 제일고와 중앙고의 라이벌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그러자 1976년에 강릉시축구협회는 제일고와 중앙고가 1년마다 단오제 시기에 맞춰서 정식으로 정기전을 벌이는 것을 제안했다. 이로인해 1970년대 들어 제일고,중앙고,주문진수산공업고가 3파전을 벌이던 단오제축구대회는 제일고와 중앙고의 정기전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현재 ‘강릉 정기전’이라 불리는 축구 대회의 탄생이었다. 

이후 제일고와 중앙고의 정기전은 강릉을 대표하는 축구축제로 발전했다. 비록 간혹가다 재정문제나 과열된 응원열기로 인해 대회가 중단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학교 동창회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정기전의 전통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고 2008년에는 강릉단오제위원회가 축구를 단오경축행사의 공식종목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제일고의 강원 FC 유스지정과 3년간의 중단, 그리고 부활'

그러나 강릉 정기전은 2014년에 중앙고의 항의로 일시 중단되었다. 제일고는 2011년 12월에 강원 FC의 U-18 유스팀으로 지정된 이후 과거보다 전력이 더욱 강해졌다. 이 덕에 제일고는 2012년과 2013년에 벌어진 강릉 정기전에서 중앙고를 모두 꺾었다. 그리고 2011년까지 6승 14무 6패로 팽팽했던 정기전 전적도 제일고가 8승 14무 6패로 앞서게 되었다. 전력에서 열세를 보이게 된 중앙고는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하며 2014년 정기전의 불참을 선언했다. 

하지만 두 학교는 2015년에 정기전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강릉시민들의 주된 볼거리를 계속 중단상태로 유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릉 정기전은 2015년에도 열리지 못했다. 1984년에 개장한 이후 강릉 정기전의 새로운 개최장소로 강릉종합운동장이 전국체전과 전국장애인 체전을 위한 보수공사에 들어간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로 인해 단오제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6년 올해, 강릉 정기전은 우여곡절끝에 다시 열리게 되었다. 3년만에 치러지는 29번째 정기전이다.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운명의 한판 승부를 벌일 제일고와 중앙고는 치열한 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제일고는 2016 전반기 전국고교축구리그에서 K리그 유스팀들과 맞대결을 치르며 예열을 마쳤다. 중앙고는 조선대학교 축구부,호남대학교 축구부와 평가전을 치르며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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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전과 3만관중

강릉 정기전에서 제일고와 중앙고의 응원전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경기가 벌어지기 1~2달전부터 재학생들이 응원전을 준비하는 것은 오랜 관례였다. 그리고 경기 당일에는 양교의 학생들과 동문들이 단체로 시가지를 행진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그라운드 밖에서부터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경기가 치러지는 강릉종합운동장에 진입하면 경기장의 응원석은 절반으로 갈린다. 오랜 전통에 따라 북쪽스탠드에는 제일고 응원단이, 남쪽 스탠드에는 중앙고 응원단이 자리를 잡는다. 나머지 자리는 시민들이 차지한다. 매년마다 경기장에 운집하는 관중들은 2~3만명에 달한다. 웬만한 K리그 클래식 경기보다 많은 숫자라 할 수 있다.




#강릉 정기전이 배출한 스타들

강릉의 두 라이벌 학교들은 그동안 수많은 스타들을 배출해왔다. 국가대표로 우수한 활약을 펼쳤던 설기현,이을용,정경호,김도근 등은 모두 제일고를 졸업했다. 또한 현재 K리그 클래식을 누비고 있는 오반석,한상운과 강원 FC에서 활약중인 길영태,손설민,박요한도 제일고 출신이다. 특히 박요한은 제일고가 강원 FC 유스로 지정된 이후 강원 FC 유스 시스템의 수혜를 입은 대표적인 선수이다.

한편 강원 FC의 유일한 원클럽맨이며 현재 상주 상무에서 군복무를 수행중인 김오규는 중앙고등학교가 낳은 강릉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리고 K리그 클래식에서 활약중인 안재준과 최재수,현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학범,김현석,우성용 감독 등도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