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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 박종진 “시련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작성일 : 2009-02-14 조회수 : 19,352



한때 정말 잘 나갔다. 박주영(AS모나코) 만큼은 아니었지만 한국 축구를 짊어질 재목으로 손꼽혔다.

 18살 때 두살 위의 선배들과 함께 2005년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월드컵에 나섰고, 2년 뒤 2007년 캐나다에서 벌어진 세계청소년월드컵에서도 주축 선수로 뛰었다.

 핌 베어벡 감독 체제였던 2006년 22세가 주축이었던 올림픽 대표팀에 19살의 나이로 발탁됐다. 차세대 대표팀의 오른쪽 미드필드를 책임질 선수로 주목받았다.

 K리그와 J리그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고심끝에 그는 J리그를 택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그는 잊혀진 선수가 됐다.

 야심차게 진출했던 J리그에서 실패한 탓이다. 지난해 말 열린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 4순위로 밀렸다. 유럽 무대를 꿈꿨지만 이제 그의 목표는 ‘명예 회복’으로 바뀌었다.

 J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강원FC에 입단한 박종진(22) 얘기다.

 약관을 전후로 한 나이에 축구선수로 ‘하늘과 땅’을 경험한 박종진을 강원FC의 전지훈련이 진행중인 중국 쿤밍에서 7일 만났다.

 -J리그에서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2007년 1월 나를 영입했던 아마르 오심 감독(이비차 오심 전 일본대표팀 감독 아들)이 2008년 시즌을 앞두고 경질되면서 내 위치가 위축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07년 여름 왼쪽 발목을 다쳤고 부상이 장기화하면서 1년 정도 뛰지 못해 구단에서 잊혀진 용병이 됐다. 결국 2008년 여름 구단에 임대를 요구했고 2부리그인 미토 홀리호크에서 시즌을 마친 뒤 국내 복귀를 결심했다.

 -실패했지만 J리그에서 배운 것도 많을 텐데.

 ▲일본에 처음 갈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용병으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일본 선수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성급한 도전이었다. 또 부상 이후 재활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많이 성숙해진 시간이었다.

 -K리그 드래프트에서도 1순위로 지명되지 못했다. 2순위로 강원FC에 지명됐는데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 같다.

 ▲14명의 우선 지명에 들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솔직히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현재 내 위치가 이 정도구나’ 생각하니 오기가 생겼다. J리그 실패와 드래프트 2순위는 박종진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두차례의 시련이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올 시즌 목표는.

 ▲신인상 같은 타이틀에는 마음 비웠다. 주전을 차지해 경기에 꾸준히 나가는 것이 1차 목표다. 팀의 주축선수가 돼 반드시 재기하겠다.

<쿤밍(중국)| 스포츠 칸 = 김종력기자>